르네상스 음악은 오랜 세월 잊힌 예술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피터 필립스와 탈리스 스콜라스는 이 낯설고도 아름다운 음악을 무대 위로 되살려내며 전 세계 청중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를 무대 위로 끌어와 현재의 언어로 노래하는 진정한 르네상스의 부활자라 할 수 있다.
1. 과거의 음악을 현재로 소환한 사람들
르네상스 음악은 중세 음악보다 한층 세련되고, 바로크 이전의 시대적 정서를 간직한 예술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는 낯선 음악으로 여겨졌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악보는 현대 악보와 달리 정확한 연주법이나 해석에 대한 지침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연주자는 많은 부분을 상상력과 음악적 직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 속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여러 고음악 단체들이 르네상스 음악을 재조명하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청중과의 접점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피터 필립스가 창단한 탈리스 스콜라스는 독보적인 존재다. 1973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아마추어 학생들과 첫 공연을 가진 이후 이들은 르네상스 폴리포니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합창단으로 성장했다. 일반적인 합창단이 바흐, 헨델, 모차르트를 중심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선호하던 시절에, 오직 팔레스트리나, 탈리스, 버드 같은 르네상스 작곡가들의 음악만으로 연주회를 구성하는 것은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이들의 정교하고 우아한 합창은 청중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하며, 르네상스 음악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피터 필립스는 역사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현재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과거의 음악을 새롭게 들려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때때로 음고를 조절하고, 라틴어 발음에서도 엄격한 고증보다 자연스러운 소리를 추구한다. 이는 철저한 고증주의자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필립스의 방식은 분명히 청중과 음악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고, 보다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 결과, 탈리스 스콜라스는 전 세계 수천 회에 달하는 공연과 수십 장의 음반을 통해 르네상스 음악의 보편성과 감동을 널리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2. 영국 합창 전통의 유산과 탈리스 스콜라스의 진화
영국은 오래전부터 합창의 전통이 강한 나라로 손꼽혀 왔다. 특히 19세기 말부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런던의 대성당 등에서 발전해온 남성 성가대 전통은 수많은 우수한 합창 인력을 배출하는 토대가 되었다. 영국의 합창 문화는 단지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악보에 대한 빠른 이해와 뛰어난 합창력, 그리고 성부 간의 정교한 균형에 있어서도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아왔다. 이러한 전통 위에 세워진 합창 스타일은 흔히 옥스브리지 스타일로 불리며, 특유의 정제된 톤과 맑고 창백한 음색이 특징이다.
탈리스 스콜라스는 바로 이 전통 위에서 출발해, 그보다 한층 더 전문적이고 예술적인 완성도를 갖춘 연주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성부 당 두 명 정도의 소편성으로 연주하지만, 사운드는 투명하면서도 입체감이 뛰어나며, 섬세하게 조율된 비브라토와 부드러운 레가토가 곡 전체를 감싸 안는다. 목소리는 서로 유기적으로 융합되면서도 각 성부의 선율이 또렷하게 드러나며, 대위법 구조의 명료성이 극대화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탈리스 스콜라스의 사운드는 단순한 앙상블 이상의 음악적 깊이를 지닌다. 이들은 연주의 전 과정을 지휘자 중심이 아닌 성부 간의 상호 소통과 집중을 통해 이끌어내며, 독립성과 일체감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 결과 듣는 이로 하여금 단순히 과거의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과 감정을 직접 체험하게 한다. 이는 단순한 고음악 연주를 넘어, 합창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 중 하나라고 평가할 수 있다.
3. 르네상스 음악의 정수를 세계로 확산시키다
탈리스 스콜라스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단지 우수한 연주에 그치지 않고, 르네상스 음악을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확산시켰다는 점이다. 이들은 바흐나 헨델과 같은 유명 작곡가의 곡조차 부르지 않으며, 오로지 르네상스 폴리포니에 집중하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이는 대중성을 포기한 듯 보이지만, 오히려 그 철저한 정체성이 탈리스 스콜라스를 전 세계 청중과 평론가들로부터 차별화된 예술단체로 각인시켰다.
이들의 음반은 음악적 완성도뿐 아니라 음악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작업들로 평가받는다. 팔레스트리나의 미사곡을 완전한 주기로 녹음하거나, 윌리엄 버드의 종교음악을 시대적 맥락에 맞춰 해석하는 방식은 단순히 음악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와 음악의 관계를 되새기게 한다. 또한 그들은 존 태버너와 같은 현대 작곡가의 작품도 르네상스 폴리포니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하여,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를 구축하고 있다.
1994년,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의 복원과 팔레스트리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음악 행사에서 수많은 이탈리아 합창단 대신 피터 필립스와 탈리스 스콜라스를 초청한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는 이들이 르네상스 음악의 대표자로서 세계적 인정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필립스는 언젠가 진지한 음악이 반드시 독일의 관현악 전통이나 오페라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탈리스 스콜라스는 르네상스 음악이 단지 고루하고 먼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충분히 감동과 사유를 전달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예술임을 입증해왔다. 이들은 단순한 연주 단체가 아니라, 시간과 음악, 그리고 청중을 이어주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