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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 코리아 일렉트릭 밴드, 재즈의 경계를 허무는 전율의 사운드

태태쓰10 2025. 7. 11. 13:26

한때 재즈계는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정통성을 강조한 어쿠스틱 재즈였고, 다른 하나는 전자 사운드를 도입한 컨템포러리 재즈였다. 그 경계를 처음으로 넘은 이가 마일스 데이비스였다면, 그 벽을 완전히 무너뜨린 이는 칙 코리아와 그가 이끈 일렉트릭 밴드였다. 재즈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사운드를 끊임없이 탐구했던 이 밴드는 장르와 시대를 초월한 음악적 통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기억된다.

 

1. 재즈의 이분법을 뛰어넘은 칙 코리아와 일렉트릭 밴드의 등장

재즈는 20세기 음악의 결정체로서 자유와 창조,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마일스 데이비스가 일렉트릭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재즈는 전통과 현대라는 두 가지 축으로 분열되었다. 당시 전통을 중시하던 일부 음악가들은 전자 사운드를 받아들이는 것을 재즈의 변질로 간주했고, 이러한 흐름은 1980년대 윈턴 마설리스가 주도한 신전통주의로 다시 고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분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무의미해졌다. 그 중심에 칙 코리아가 있었다. 그는 정통 재즈와 전자 음악의 접점을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고민했고, 두 세계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밴드 모델을 고안해냈다. 그 결과가 1986년 결성된 일렉트릭 밴드다. 이 밴드는 단순히 퓨전 재즈의 확장판이 아니었다. 일렉트릭이라는 이름에서 한 글자를 바꿔 ‘일렉트릭(Elektric)’이라 명명한 것처럼, 기존의 어떤 밴드와도 다른, 칙 코리아 고유의 음악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가 선택한 밴드의 초석은 베이시스트 존 패티투치와 드러머 데이브 웨클이었다. 두 사람은 전통적인 어쿠스틱 트리오인 어쿠스틱 밴드에도 참여했으며, 일렉트릭 밴드에서도 핵심적인 리듬 파트를 형성했다. 동일한 멤버가 어쿠스틱과 전자 악기를 넘나드는 두 밴드를 동시에 이끌어간다는 것은 이전의 어떤 재즈 뮤지션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이 실험은 결국 재즈가 정통성과 현대성을 양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증명해낸 사건이었다.

 

2.최고의 팀워크가 만든 장르를 초월한 사운드

1987년, 칙 코리아는 일렉트릭 밴드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두 명의 멤버를 추가 영입한다. 색소포니스트 에릭 마리엔탈과 기타리스트 프랭크 갬베일이었다. 이들의 합류는 단순한 인원 보강을 넘어 밴드의 음악적 색채를 획기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마리엔탈의 색소폰은 부드럽고 감성적인 톤을 유지하면서도 때때로 강렬한 에너지로 폭발했고, 갬베일의 기타는 록과 R&B의 감성을 불어넣으며 전체 사운드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일렉트릭 밴드가 주목받은 진짜 이유는 이들의 테크닉이나 장르적 융합에만 있지 않았다. 이 밴드는 어떤 스타일의 곡이든 정확하고 매끄럽게 소화할 수 있는 압도적인 팀워크를 보여주었다. 각 연주자는 자신의 역할을 철저히 수행하면서도 서로의 연주를 경청하고 반응하며, 그 결과 모든 곡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갖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1988년 발매된 앨범 보는 자의 눈의 수록곡 기억상실이다. 곡은 처음부터 강렬한 일렉트릭 사운드로 시작되지만, 그 안에는 칙 코리아가 1960년대부터 탐구해왔던 스릴 넘치는 솔로 전개가 살아 숨 쉰다. 1990년 작 인사이드 아웃에 수록된 소원을 빌다 역시 외견상 팝과 록의 전자적 질감이 짙지만, 그 구조는 고전적인 모달 재즈의 변형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다. 이처럼 일렉트릭 밴드는 장르를 넘어서 음악적 본질을 추구하는 팀이었다.

재즈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토록 각 멤버가 독립적으로도 리더급 실력을 갖춘 밴드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일렉트릭 밴드는 그들의 개별 역량을 넘어서, 팀으로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균형과 응집력을 자랑한다. 연주 내내 복잡한 리듬과 변박, 예측할 수 없는 코드 진행 속에서도 음악적 중심을 잃지 않으며 서로의 연주를 밀도 있게 채워나간다. 이것이 일렉트릭 밴드가 단순한 슈퍼그룹이 아닌, 예술적 팀워크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3.해체 없이 살아 있는 전설, 일렉트릭 밴드의 현재와 내한 공연

일렉트릭 밴드는 공식적으로 2004년 이후 새로운 정규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산을 선언하지도 않았고, 실제로도 지속적으로 재결성되어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밴드를 이끌거나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일렉트릭 밴드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설 때마다 여전히 전율을 일으킨다. 30년 전 이들이 함께 만들었던 그 짜릿한 음악적 순간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세월을 거치며 더 깊어진 에너지를 품고 있다.

칙 코리아는 생전에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멈추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스타일이나 장르를 넘는 것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에 충실하는 데 있었다. 그런 철학은 일렉트릭 밴드를 통해 그대로 구현되었다. 이들은 재즈라는 언어로 말하되, 그 어휘와 문법은 고정되지 않고 유연하게 변화한다. 일렉트릭 밴드는 그러한 철학이 집단적 형태로 구현된 사례다.

2017년 3월, 이들이 한국에서 내한 공연을 펼쳤다는 사실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의 생생한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공연에서는 그들의 대표곡은 물론, 오랜만에 함께 모인 멤버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해석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의 음악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발판으로 새로운 감각과 상상력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렉트릭 밴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함없이 재즈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는 존재다. 장르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오늘날, 그들의 음악은 그 어떤 시대보다 유효한 울림을 전달한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만들어내는 전율의 순간은 재즈팬들에게 단순한 음악을 넘어선 감동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