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시 [금강], 가극 [금강]에 이어 뮤지컬로 재탄생한 [금강, 1894]는 동학농민혁명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소환한 작품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넘어, 민중의 시선에서 본 삶과 혁명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1. 서사시에서 무대극으로, 민중 서사의 흐름
뮤지컬 [금강, 1894]의 뿌리는 시인 신동엽이 1967년에 발표한 서사시 [금강]입니다. 이 시는 4,800행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시인은 1894년의 봉기를 하나의 단절된 사건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제와 부여 시대, 3.1운동, 4.19 혁명 등 우리 민중이 자유를 외쳐온 모든 역사의 흐름을 관통하는 거대한 민중의 서사로 확장했습니다.
이 서사시는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문호근 연출에 의해 가극 [금강]으로 무대화되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민중은 노래하고, 울고 웃으며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습니다. 문호근 연출은 원작의 정신을 계승하여 극의 시작을 4.19 혁명에서 출발하게 했습니다. 민중의 저항이 과거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었습니다.
2004년에는 연출가 김석만이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역사적 해석보다는 동학농민혁명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농민들이 왜 도구 대신 무기를 들었는지, 왜 혁명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 작품은 남북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평양에서 상연되었으며, 민족을 가른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함께 눈물짓고 웃는 역사적 경험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처럼 [금강]은 하나의 문학작품을 넘어,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살아 움직이는 ‘민중 예술’의 상징이 되어왔습니다.
2. 뮤지컬 [금강, 1894], 새로운 감각으로 돌아오다
2016년, [금강]은 다시 한 번 진화했습니다. 이번에는 뮤지컬 [금강, 1894]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뮤지컬은 연극적 장치와 음악, 안무, 무대미술 등 다양한 예술 요소를 통해 서사시의 정신을 보다 감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뮤지컬 [금강, 1894]는 역사적 사건 전체를 다루기보다는 전주성 무혈 입성 직전부터 우금치 전투까지의 시간적 흐름에 집중합니다. 이 시기 동안 평범한 농민들이 어떻게 혁명의 주체가 되었는지를 서사적 중심축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전봉준, 김개남 등 역사적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과 함께 역사를 이룬 ‘이름 없는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특히 주목할 인물은 신동엽의 원작에서 등장했던 ‘하늬’와 ‘진아’입니다. 이들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지만, 민중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뮤지컬에서는 하늬를 착호갑사(호랑이를 잡는 무관)로 설정하여, 그의 내면 변화와 시대적 격랑에 휘말린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습니다. 진아 역시 궁녀 출신이라는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억압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강인한 인물로 재탄생했습니다.
이처럼 뮤지컬 [금강, 1894]는 사실의 재현보다 민중의 삶과 감정에 주목합니다. 감정의 호소와 무대 언어의 다양화, 음악의 리듬감은 관객들로 하여금 130여 년 전의 뜨거운 함성을 오늘의 언어로 경험하게 만듭니다.
3. 혁명의 주체는 누구였는가: 민중의 눈으로 본 1894년
뮤지컬 [금강, 1894]가 가장 강조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혁명은 소수의 지도자들이 아닌, 다수의 민중들이 주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전봉준이나 김개남은 물론 중요한 인물이지만, 실제 역사를 움직인 것은 자신의 삶과 가족,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결단이었습니다.
뮤지컬은 이들의 이야기를 정면에서 응시합니다. 땀과 눈물, 고통과 희망이 뒤섞인 삶의 현장 속에서 혁명이 피어났음을 말합니다. 이는 과거 동학농민혁명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싸우겠는가?’,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음악은 이런 감정을 더욱 깊이 전달합니다. 민요, 민중가요, 전통음악, 심지어 오페라적 요소까지 결합한 복합 장르는 작품에 다층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뮤지컬 넘버는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등장인물의 선택에 공감하게 만들며, 혁명의 현장으로 몰입하게 합니다.
뮤지컬 [금강, 1894]는 단순히 과거를 기리는 공연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연결된 과거’로서의 1894년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그 해 여름, 무명 농민들이 걸었던 그 길 위에 오늘의 우리가 다시 서게 되는 것입니다.
뮤지컬 [금강, 1894]는 한 편의 공연을 넘어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선언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가극과 뮤지컬을 거치며 시대와 호흡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무대 위에 선 민중들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과거를 마주할 용기, 그리고 오늘을 바꿀 결단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