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 카피톨 국립 오케스트라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프랑스 남서부 도시의 예술적 정체성과 함께 성장해온 이 악단은 섬세하고 세련된 프렌치 사운드의 진수를 보여주며, 클래식 음악계에서 확고한 존재감을 다져왔다.
장밋빛 도시 툴루즈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자존심
프랑스 남서부 미디피레네 지방의 중심도시 툴루즈는 파리, 마르세유, 리용에 이어 프랑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다. 유럽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지이자 오랜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로마네스크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는 생 세르냉 대성당과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했던 미디 운하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해 질 무렵 붉게 물든 벽돌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색감 때문에 이 도시는 장밋빛 도시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런 도시의 예술적 감성과 깊은 역사는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중요한 하나의 상징으로 이어진다. 바로 툴루즈 카피톨 국립 오케스트라가 그 중심에 있다. 이 오케스트라는 1960년, 툴루즈 카피톨 극장 소속의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툴루즈 피레네 교향악단이 합쳐지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주로 오페라와 발레 반주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본격적인 관현악 연주는 드물었다. 그러나 1968년 미셸 플라송이라는 지휘자가 부임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플라송은 이 악단을 단순한 지방의 오페라 반주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콘서트홀로 전환된 알로그랭을 거점으로 삼고, 음반 작업과 해외 투어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며, 프랑스적인 사운드를 정교하고 산뜻하게 재현하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툴루즈 카피톨 오케스트라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프랑스 고유의 우아하고 조화로운 음향을 간직한 대표적인 악단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미셸 플라송에서 투간 소키예프까지 이어지는 음악적 유산
툴루즈 카피톨 국립 오케스트라가 본격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미셸 플라송이라는 지휘자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1968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35년간 이 악단을 이끌면서 기량과 명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플라송은 단원들에게 보다 엄격한 예술적 기준과 목표를 제시하며 단단한 앙상블을 구축했고, 동시에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레퍼토리 확장을 통해 색채감 있는 프렌치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그는 에어버스와 같은 기업 후원을 이끌어내어 ‘아이다’라는 펀드레이징 그룹을 만들었고, 음반 녹음과 해외 순회공연에 대한 재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의 지휘 아래서 ONCT는 세계 유수의 클래식 음반 레이블인 EMI와 협업해 다수의 음반을 남기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프랑스적 음향의 정통성과 세련미를 가장 잘 구현하는 대표 악단으로 부상했다.
그 뒤를 이은 인물은 러시아 출신의 젊은 지휘자 투간 소키예프이다. 그는 2005년 수석객원지휘자로 ONCT에 합류했고, 2008년부터는 음악감독으로 정식 취임했다. 1977년 러시아 북오세티아 출신인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전설적인 지휘 교육자 일리야 무신에게 배운 실력을 바탕으로 젊은 나이에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웨일즈 국립 오페라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후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 등 유수 기관에서 음악감독을 역임하며 폭넓은 활동을 이어갔다.
소키예프는 툴루즈 카피톨 국립 오케스트라에 러시아적인 중후함과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프랑스 고유의 유려한 음색 위에 러시아적인 강렬함과 리듬감을 덧입힌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단순히 기존의 색채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악단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변곡점이 되었다. 이처럼 두 명의 음악감독은 서로 다른 음악적 정체성을 통해 ONCT의 위상을 한층 더 높였으며, 악단은 지금도 그 유산을 이어가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러시아 낭만주의를 품은 내한 공연, 임지영과의 환상적 협연
툴루즈 카피톨 국립 오케스트라는 2017년 4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이번 내한은 단순한 초청 공연이 아니라, 투간 소키예프가 이끄는 악단의 정수를 한국 무대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프로그램은 러시아 낭만주의 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레퍼토리로 구성되었으며, 프랑스 악단 특유의 세련됨과 러시아적인 에너지가 만나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낼지 기대를 모은다.
1부는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가 연주된다. 협연자는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임지영이다. 그녀는 깊이 있는 해석과 선 굵은 표현, 풍부한 감성으로 이미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연주자이며, 이번 무대에서는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통해 차이콥스키의 열정과 서정성을 아름답게 펼쳐낼 예정이다. 그녀의 개성과 악단의 음색이 만나 만들어낼 감동은 이번 공연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2부에서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교향적 모음곡 셰헤라자데가 연주된다. 이 작품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곡으로,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다채로운 리듬, 풍부한 감정선이 어우러진다. 투간 소키예프의 장기 레퍼토리이기도 하며, 툴루즈 카피톨 국립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색채감과 정교한 앙상블이 돋보일 수 있는 완벽한 선택이다.
이번 내한 공연은 단순한 연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프랑스 남부 도시의 예술적 전통과 현대 지휘자의 새로운 해석이 어우러지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기회인 동시에, 클래식 음악의 다양성과 국제적 교류를 실감할 수 있는 뜻깊은 무대이기 때문이다. 소키예프와 ONCT,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만들어낼 이 공연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한 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