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의 경계를 넘는 자, 웨인 맥그리거의 무한한 실험’은 예술과 과학, 기술이 융합된 무용의 최전선을 보여줍니다. 무대 위 몸짓을 통해 인간의 인지, 감각, 테크놀로지를 탐구해온 웨인 맥그리거의 12년 만의 내한은 그 자체로 사건입니다.
춤, 기술, 예술을 연결하는 천재 안무가의 탄생
웨인 맥그리거는 무용계 안팎에서 ‘가장 혁신적인 안무가’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영국 맨체스터 근교의 스톡포트 출신으로, 8살 때 존 트라볼타가 주연한 영화들을 보며 춤에 매혹됐고,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다양한 춤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리즈대학교에서 안무와 기호학을 공부하고, 미국 호세 리몽 스쿨에서 유학하며 전문 무용수로서의 길을 닦았습니다.
그의 재능은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불과 21세의 나이에 런던의 ‘더 플레이스’에서 상주 안무가로 발탁되었고, 같은 해 자신의 무용단인 ‘랜덤 댄스 컴퍼니’를 설립해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안무는 팔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관절의 섬세한 회전과 라인을 강조하는 신체적 특징을 바탕으로 하며, 전형적인 현대무용의 틀을 넘는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맥그리거는 음악, 영화, 연극, 오페라, 패션,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와 협업하며 예술의 경계를 확장해 왔습니다. 현대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 패션 디자이너 가레스 퓨, 작곡가 조비 탈봇 등과의 협업은 그의 작업이 단순한 안무를 넘어선 ‘종합 예술’임을 입증합니다. 라디오헤드의 [Lotus Flower], 케미컬 브라더스의 [Wide Open] 같은 대중문화 속에서도 그의 흔적은 선명하며, 영화 [해리포터와 불의 잔], [신비한 동물사전]의 인물 동작 역시 그의 연출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오감을 자극하는 구조로 설계되며, 인간의 움직임과 감정을 고도로 분석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미적 표현을 넘어, 무대 위에서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작가로서 그는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품은 무용, 움직임의 미래를 실험하다
웨인 맥그리거의 작업 세계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키워드는 바로 ‘과학’과 ‘테크놀로지’입니다. 그는 단순히 안무가를 넘어 움직임의 기제를 탐구하는 실험가이자 연구자입니다. 컴퓨터와 기술에 대한 흥미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심리학, 뇌과학으로까지 관심이 확장되며 무용과 과학의 융합을 이뤄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초기 실험작인 [Sulphur 16], [Aeon], [The Millennarium] 등의 3부작은 애니메이션, 디지털 필름, 3D 건축, 전자음악 등 다양한 매체를 무용과 결합시킨 선구적 작업이었습니다. 특히 [Aeon]에서는 디지털 배경이 무대 위에서 계속 바뀌고, 무용수들이 가상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돼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997년에는 [53 Bytes]라는 작품에서 위성을 이용해 독일과 캐나다의 무용수들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공연하는 방식도 선보였습니다. 지금은 흔한 인터넷 생중계 공연조차도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으며, 그는 이를 2000년 실제 공연에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과학적 탐구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움직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안무를 신체적 사유의 과정으로 바라보며, 인간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고 타인과 상호작용하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그의 창작 방식입니다. 대표작 [Ataxia]는 뇌와 몸의 불협화음을 소재로 만든 작품으로, 캠브리지대 실험심리학 연구에 참여한 경험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번에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Atomos]는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 가장 극대화된 작품입니다. 무용수들에게 부착된 센서를 통해 신체 반응을 데이터화하고, 이를 통해 ‘가상의 몸’을 생성해 창작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3D 영상, 조명, 첨단 음향과 어우러진 공연은 관객들에게도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체험을 선사합니다.
발레의 전통을 뒤흔든 혁신, 클래식 무대 위의 도전과 변화
웨인 맥그리거는 현대무용뿐 아니라 클래식 발레계에도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인물입니다. 2006년, 그는 현대무용 안무가로는 처음으로 영국 로열 발레단의 상주 안무가로 임명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시에는 발레 팬들 사이에서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보수적인 발레계를 흔들며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혔습니다.
로열 발레단이 그를 상주 안무가로 낙점하게 만든 작품은 [Chroma]였습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몸과 감정, 사고의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는 컨템포러리 발레로, 기존의 틀을 완전히 탈피한 시도였습니다.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이듬해 ‘올리비에상’ 무용 부문 최고작품상을 수상했고, 세계 유수의 발레단이 레퍼토리로 채택하면서 전 세계에서 재공연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Tree of Codes]는 비주얼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 뮤지션 제이미 엑스엑스와 협업한 작품으로, 파리 오페라 발레와 함께 초연돼 현대 발레의 또 다른 경지를 열었습니다. 2016년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장편 발레 [Woolf Works]로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그 존재감을 입증했습니다.
그의 유연한 감각과 협업 능력은 무용뿐 아니라 연극과 오페라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2015년 리바이벌된 연극 [Closer]에서는 그의 움직임 연출이 극의 에너지를 극대화했다는 평을 받았고, 오페라 무대에서도 등장 인물의 동작을 극적으로 해석하는 그의 역량은 돋보입니다.
최근에는 런던 동부 올림픽 파크에 자신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를 오픈하며 창작 활동의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작업실이 아닌,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새로운 예술을 실험하는 플랫폼이자, 런던 동부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핵심 문화공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